Glimmer

Art for Lab, 30 March 2026 – 07 June 2026

Glimmer 설치 전경 1
Glimmer 설치 전경 2
Glimmer 설치 전경 3
Glimmer 설치 전경 4

Glimmer, 도처의 눈이 머무는 자리

박하은 아트 포 랩 디렉터

젊음이 도처에 널려 있다고들 한다. 그 젊음의 수만큼이나 수많은 시선이 도처를 향해 정처 없이 흐른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소셜 미디어를 가득 채운, 타인의 승인을 갈구하며 정교하게 설계된 이미지들은 역설적으로 보는 이의 내면을 결핍과 의심으로 침전시킨다. 젊은 눈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설계된 매끄러운 이미지들은 줄곧 젊음 그 자체로 치환되어 젊음을 모욕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젊음을 박제하고 소비하는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그렇다면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시선'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나아가 눈(시선)이라는 감각 기관은 본래 무엇을 향해야 마땅할까? 이러한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사진이 단지 '보이는 것의 재현'을 넘어 하나의 사건으로 거듭나기 위해, 젊은 사진가들의 눈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눈은 본디 욕망이 이글거리는 창이다. 보는 눈과 보지 못하는 눈 모두 욕망과 결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곳에 모인 열두 명의 눈들은 자신들의 눈이 결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감추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눈은 세상이 규정한 매끄러운 욕망을 좇는 대신, 아직 욕망인지도 몰랐거나 혹은 욕망할 만한 것인지도 모를 모호한 경계들을 훑는다. 이들의 눈은 세상이 규정한 획일적인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에 속하지 못해 소외된 결핍의 자리를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세상이 보여주는 ‘뻔한 풍경(동일자)’과 우리가 느끼는 ‘낯선 소외(타자)’는 애초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꼬리를 문 채 기묘하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¹

따라서 이 젊은 눈들이 카메라를 통해 매끄러워지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르게 비틀어내는 감각은 일종의 적극적인 개입이자 조작이다.² 이들은 전체와 부분의 비례를 흔들고, 눈에 보이는 장면과 그 뒤에 숨은 정서의 무게를 다르게 연결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기대치와 그 기대가 처참히 무너진 진짜 현실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배치한다. 이들의 눈은 욕망인지도 몰랐던, 욕망할 만한 것인지도 모를 갖은 욕망의 자리를 훑는다. 욕망이 작동하려고 움트는 자리, 혹은 욕망이 실패한 자리. 승인되지 못하고 거부당한 욕망, 짓밟힌 욕망, 모자란 욕망, 타인의 욕망을 가만히 응시하고, 기꺼이 함께 목격하도록 돕는다.

‘Glimmer’는 어둠 속에서 가물거리는 희미한 빛이자, 어떤 상태가 시작되려는 미세한 기미를 뜻한다. 이곳에 모인 작가들이 머물렀던 장소와 시간이 찰나의 이미지가 되어 이곳저곳으로의 방향타처럼 놓여 있다. 이 방향타들은 소셜 미디어가 설계한 눈부신 섬광이 아니라, 욕망의 기미를 희미하게(glim) 비추는 눈들이다. 겉표면의 질서에 작은 균열을 내며, 그 아래 숨은 불완전한 욕망과 정서를 가만히 비추는 젊은 눈들. 《Glimmer》는 아직 언어가 닿지 못한 감각들의 주변을 오래 서성인다. 희미하게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처럼, 이미지들은 끝내 붙잡히지 않는 어떤 마음과 세계의 기척을 남긴 채 잠시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다.

1.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역), 서울: 현실문화, 2014, p. 12.

2. 앞 책, p. 13.